남자 나이 50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프롤로그 -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지금 오십 세가 되어가는 사람이나, 방금 오십을 넘긴 사람이나, 육십을 눈앞에 둔 사람 모두에게는 두 장의 히든카드가 있다. 하나는 아직도 창창한 미래라는 카드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같이 뽑아들 수 있는 과거의 경험이라는 카드다. 오십 세라는 나이는 중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위기라는 개념과 반드시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중년과 위기를 한 쌍으로 간주하곤 하는데, 이런 비참한 짝짓기는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암울한 환상과 같은 것이다.
앞으로 남은 새로운 반생을 위해 우리는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게 지금 당장은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멀리 볼 때 그리고 아직 반이나 남은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주변을 돌아볼 때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 -삶을 사랑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 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들 모두가 삶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는 통찰력과 자기반성 그리고 이 둘을 바탕으로 한 뚜렷한 목표 설정 등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삶을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의식하면서 꾸려나간다는 점이다.
그러면 삶을 의식하면서 꾸려나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말의 뜻은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성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때에 따라 좀 더 많이 할 수도 있고, 좀 덜할 수도 있다는 자세로, 그리고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마음으로-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찰을 통해서 삶의 윤곽을 좀 더 분명하게 그릴 수 있고, 또 스스로가 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도 있다. 즉 삶을 매일 우리들에게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연극 무대로 보자는 말이다. 인생을 그런 무대로 보는 오십대는 지금이 자신의 최고의 시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새로운 비전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비전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우리는 비전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에 스스로 도전할 수도 있고, 나아가 이제까지 쌓아온 경험의 경계선을 떠날 수도 있다. 즉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도처에 널려 있는 가능성들을 향해 길을 나서는 것은, 비전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참고로 비전을 갖기 위해 어떤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오십대에 접어든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비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은 이 모든 것들, 즉 지식은 지금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결국은 경험의 보물 상자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한편 비전이란 어떤 여행이면 좋겠다라는 형식으로 권하는 제안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비전도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남자 나이 50인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강력한 엔진을 가진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다. 이제 시동을 걸어야 하는 사람도 자신이고,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 즉 비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도 바로 자기 자신이다. 어떤 길을 가게 되든, 우리의 자동차 트렁크에는 튼튼하고 지혜로 가득 찬 물건을 하나씩 싣고 있는데, 그것은 지난 50년 동안 우리의 몸으로 만들어온 최고의 선물, 바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남은 반생을 위하여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바로 나이 50이 된 때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습으로 나타나는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이미지나 흔적, 우리 자신의 처신도 중요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가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을 결정하는 나이는 바로 오십대이다.
친구, 나의 자화상
누구든지 자신의 친구들 -이른바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친구들- 을 살펴볼 때,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그 사람들의 이면에는 지금껏 자신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그리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그리움은 자기가 이제껏 노력해서 성취한 업적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과는 거의 반대되는 곳을 향해 있다. 예를 들어 과도한 업무로 고통스러워하는 의사는 하루 동안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보낼 수 있는 휴식을 꿈꾸고, 자기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 금전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금욕적이고 소박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오십 번째 생일을 계기로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공한 친구들이 한탄스럽게 내뱉는 불만을 배부른 소리라고 쉽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불만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직업이나 사생활에서 얻는 개인적인 명망은 사회적인 지위나 금전적인 능력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범할 수 있는 많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또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자극을 받아야 하며, 때로는 경고를 받기도 해야 한다.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은 어떤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가상과 실제의 모습이 꼭 들어맞고 있는가, 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안타깝게 여기며, 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친한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또 진실어린 대답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후의 만족스러운 삶을 향한 행로에 이미 큰 걸음을 떼어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터놓고 지내는 사람한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삶을 갉아먹는 경쟁심을 이겨낸 사람이다. 앞으로 남은 우리의 삶에서 경쟁심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젊어서 마구 흩트려 놓았던 삶의 모자이크 조각들을, 이제 전체에 들어맞도록 서서히 맞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생에서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가장 훌륭한 해답은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느냐?인데, 오십 세가 넘은 우리는 이미 자신이 자신의 삶을 위해 이제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고, 다만 어떻게?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떻게?라는 이 물음에 진실한 마음과 끝없는 노력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인생의 끝에 가서 만족이라는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서
유치원 시절에는 무엇인가에 열광한다는 것이 참 쉽고 빨랐다. 가령 오늘 기차놀이에 온통 정신이 팔렸다면, 다음날에는 전쟁놀이에 흠뻑 빠지곤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배를 가지고 놀면서 마치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상상의 날개를 펼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곧바로 흥밋거리로 빠져들던 어릴 때와 달리, 무엇인가에 자극을 받고,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중에야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단계에 빠지곤 한다.
참고로 흥미를 끌게 하는 사건은 우리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해서 자신을 바쳐 몰두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흥미에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고, 약간 감퇴될 수는 있지만 소진되는 법은 없다. 한편 무엇인가에 흥미를 가진 사람은 흥미에 의지해 살아 갈 수 있다. 왜냐하면 흥미에는 삶을 꾸미는 데 꼭 필요한 매력적인 면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만의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 흥미란 창의력을 북돋아주기도 하고, 명상의 시간에는 평안함을 안겨주는 은신처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는 아무런 흥미도, 관심거리도 없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우리 주변만 보아도 이렇게 살아가는 삶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흥미에 가득 차서 살아가는 사람, 생의 즐거움을 내뿜는 사람, 언제든지 열광에 차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 느끼고 싶어 하는 삶의 경험이라는 보물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참고로 흥미를 갖기 위해서 나이가 따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장미의 세계에 늦게 뛰어들었다고 어느 누구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오십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철학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질 수도 있으며, 육십대가 되어서야 낯선 곳 -어떤 나라가 되었든, 인식의 영역이 되었든, 혹은 정신적인 것이 되었든, 물질적인 것이 되었든- 으로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혹시 이런 경우는 없었는가? 처음에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려고 하다가, 조금 지나서 그 흥미를 중요치 않게 혹은 성가시거나 시간낭비라고 여겨서, 그 흥미에 가까이 가는 시기를 뒤로 미룬 적은 없는가? 당연히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오십대에 들어선 우리가 또다시 그렇게 하면, 행복하고 기쁨에 가득 찬 -흥미에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년의 몸치장은 무죄
어느 날 저녁, 거울 앞에 앉아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보면서, 문득 머리를 염색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이왕 하는 김에 세월이 새겨놓은 굵은 주름과 뱃속의 지방까지 제거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 드는 이런 생각들이 단순히 외모를 가꾸고 싶은 허영심일까? 아니다. 이런 생각은 일종의 자기의식, 신체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의식이지, 결코 허영심이 아니다. 또 만약 이런 생각이 허영심에 가득 찬 것이면 어떤가? 왜냐하면 허영심이라는 것도 좋은 의미에서 볼 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운동, 청춘을 지키는 최고의 프로그램
청춘을 유지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운동하고 몸을 가꾸는 것은 삶의 프로그램으로서 괜찮지 않은가? 그렇지만 운동을 삶의 목적 그 자체로 삼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오십 세가 넘은 사람들은 의사나 보험회사가 권장하는 건강진단 사항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50대가 되면 사전에 건강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건강에 신경 쓰는 목적이 청춘을 영원히 유지하는 데에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유한한 것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 마지막에는 결국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즉 건강이란 활동에 제한받지 않고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지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삶을 적극적으로 꾸려가는 사람은 매력적으로 보이길 원하고, 또한 적당한 허영심은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전제조건이 된다. 매력이란 본질적으로 육체에서 풍기는 매력을 의미하는데, 이 매력은 먼저 육체의 활력으로 표현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이러한 육체의 언어는 한편으로 대단히 고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육체의 언어를 통해 자신 주위에 항상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건강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삶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건강을 지키는 일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허영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은 물리적인 노화 과정을 자연적인 방법으로 늦추게 하는 에너지를 생성하므로, 어느 누가 이렇게 좋은 일에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오십대의 섹스
남자에게 성적인 욕망은 오십이라는 나이가 되어서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성적인 욕망은 더 강해진다. 그것이 반드시 육체적인 섹스의 방식만으로 한정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가벼운 스킨십이라든지 키스라든지 하는 방식으로 표현될 뿐이지, 결코 수그러드는 것은 아니다. 한편 나무랄 데 없는 육체는 젊은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좋다는 온갖 운동으로 몸을 단련시켜 왔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실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방법이 꼭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육체는 젊은이의 몫이고, 우리 나이에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매력 발산 방법을 연구하고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만의 성적인 매력을 구성하는 개인적인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성적인 매력을 일으키는 자극도 점점 더 필요해진다. 이러한 자극은 육체적인 상태와 선택한 옷에서 풍기는 모습 그리고 배우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는데, 특히 배우자에 대해 흥미를 가질 때 정신적이거나 사회적으로 깜짝 놀랄 만한 성적 매력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꿈속에서 바라던 바로 그것들이다. 언제 들어도 매혹적인, 지금까지 육체에 가려서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던 단어인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나이 오십부터 풍겨 나오는 성적인 분위기는 이기적인 모습과 이타적인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회색빛으로 물드는 인생의 후반부에 언젠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빛을 가져다준다. 결론적으로 나이 오십 이후의 에로티시즘과 성은 여전히 감각을 위한 가장 달콤한 축제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축제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축제가 열릴 때마다 우리는 항상 새롭게 초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십대 남자의 손목시계
나이 오십이 넘은 사람은 시간을 촉각으로 느끼는 일 -자신의 생에서 남아 있는 시간과 그 시간을 매일 헤아려 보는 것- 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의식적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느끼기 시작하면, 시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흘러가고, 당연히 시간은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으로 다가오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오랫동안 사용했거나 모아두었던 손목시계들을 몇 년 전에 모두 내다 팔았고, 이런 시계들을 처분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정치 참여
나이가 오십대인 우리는 이제 한 국가를 이끌 경륜을 가진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일선에 동참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방관하는 것이 옳은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이미 내렸다. 나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예라고, 정치적인 단체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요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나의 일에서,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의무나 권리에서까지 참여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게 문제되는 것은 효율성과 도덕성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의 저울질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정치인들은 비판받거나 무능력하다고 낙인찍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정치인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즉 유권자다. 즉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이 나아가는 방향이나 정치적 목표를 바꾸게 할 수단을 우리가 쥐고 있는 것이다. 현대는 과거와 달리 정치가만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선택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다. 나와 같은 유권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각자가 이런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셈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관심이 정치적인 권력의 남용을 막는 가장 훌륭한 보증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가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이고, 또한 동참을 생각해야만 한다. 물론 정치에 동참한다고 해서 반드시 당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야망
미디어를 통한 유명세는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이지만, 사회적인 엘리트로 사는 것은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야망은 사회를 생동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도덕적인 범주를 고수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극이다. 그러므로 나이 오십이 넘으면 적어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여하는 삶이, 그 기여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런 삶이 바로 불멸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독서, 가장 싼값에 살 수 있는 소중한 경험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책을 읽는 목적은, 정보, 지식(인식) 그리고 만족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순전히 정보를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책을 읽을 때에는, 자신이 책을 통해 받아들인 내용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을 높이려 하거나 인격을 고상하게 만들기 위한 독서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 독서 방식에서도 내가 도대체 왜 이 책을 읽는지에 대한 물음은 생긴다. 또한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언제 읽을까?라는 물음도 생겨난다. 한편 직업적인 필요 때문에 독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도 많지만, 독서는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인식을 얻기 위한 독서를 통해서만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얻는 자기의 간접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이 오십이 되면 우리들 대부분은 인생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뿐 아니라, 그 위치를 정의 내려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하라는 운명의 경고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우리는 항상 삶의 명령에 새롭게 대면하게 될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각자가 찾아야 한다. 또 자신이 찾은 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갈 것이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면 저돌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차분히 주위를 관조할 줄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들을 보면서 앞으로 자신의 인생 단계를 미리 살펴보기도 한다. 즉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세대 -우리를 앞서 갔거나, 우리와 동행하는 세대- 의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경험을 이용할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변환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독서를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책들을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책은 바로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십대의 삶이 처한 상황은 고원과 비슷하다. 우리는 그곳에 서서 과거라는 계곡을 볼 수도 있고, 앞으로 서서히 올라가야 할 미래라는 산봉우리도 볼 수 있다. 그 많은 봉우리 중에서 어떤 봉우리를 밟고 싶은가? 우리를 그 봉우리로 이끌 지도는 책 속에 있다. 왜냐하면 책 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한 경험과 인식들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신이 읽을 것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사람은, 그 책이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인식이라는 퍼즐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는 정상에 도달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중간에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 경험은 인생의 길을 선택하기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그 성패와 상관없이 독자에게 참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갔던 모든 세대들은 자신들이 성취할 인생의 파노라마를 꿈꾸었고, 자신은 비록 정상을 밟지 못한 사람이라도 자신들의 경험을 종이에 옮길 수 있었으며, 그 종이들은 책이라는 형태로 남아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이 정상에 올라가야만 한다.
종교와 믿음
신과 믿음은 매우 유사한 인식과 확신을 가지고 지난 수천 년 동안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이어져왔다. 하지만 반드시 평화적으로 찬양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신과 믿음은 오늘날에도 지배를 위한 수단과 구실로서 종교적 권력 도구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종교 중에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변한 종교도 있다. 그 종교는 전투적인 무언가를 믿음과 신으로 대체하여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기독교적인 제도와 이미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믿음의 영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매혹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독교의 양대 교파인 가톨릭과 개신교의 건물에서, 19세기 말까지는 종교적인 장중한 양식을 보며, 영혼이 깃들어 있는 깊고 자연스러운 확신을 가졌고, 또한 느꼈다. 이런 건축물이 원래대로 보존되어 있다면, 그 건축물들을 보면서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어떤 힘이 생겨났었는지를, 그리고 인간이 모든 예술품, 건축물, 장식품에서 어떤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와 불교 등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이다. 이런 믿음은 물질주의 -물질주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왔지만, 영성이 결여된 채 형식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라 할 수 있다. 도덕성과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의심 대신 안정과 확신을 느낄 수 있고, 간혹 생기는 종교적인 회의를 떨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곳, 예를 들어 나의 가정, 주위의 자연, 내가 손 댈 수 있는 예술, 창조의 의무라고 느끼는 내 행동에서 신성한 것을 찾고자 한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창조의 위대함은 우리가 그 창조에 직접 참여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즉 신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 창조라는 힘의 원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신의 존재 증명이 가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창조라는 힘의 원천은 그 숭고함에 있어서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인류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미약하나마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참고로 종교적인 영성에 대한 보편적인 욕구를 악용하는 이데올로기화된 행동주의자들은 결코 건전한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삶의 원천은, 즉 믿음은 독선적이지도 공격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평화롭고 건설적이며 모든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 이런 모습일 때에야 비로소 믿음은 의지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으며, 평화로운 공존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가는 길은 항상 열려 있다. 또 조건도 없다. 믿음으로 가는 길이 조건 없이 열려 있다는 사실 역시 나는 창조의 커다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대 간의 대화
오십이 된 우리가, 자라는 젊은 세대와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어 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식을 같이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흔들리는 작은 배에 함께 탔고, 생존을 위해서 절대 그 배를 포기할 수 없는데, 배에서는 각자 맡은 일이 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 냉철한 사고가 적절히 발휘되어야만 배는 항해를 계속 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은 모두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삶을 위협하는 상황일지라도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된다면, 그 배의 항해는 계속되어 원하는 항구에 무사히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세대 사이의 대화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선장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 빨리, 어떤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선장이 되고 싶어 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런 일들은 폭동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확한 명령과 이성에 근거한 복종은, 인생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헤쳐 나갈 유용한 커뮤니케이션이지만, 잔잔한 바다를 항해할 때는 명령과 복종보다는 대화가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심할 것은, 좋은 선장은 누구의 말이든지 경청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한 사회에서 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나이인 오십이 넘으면 누구의 말이든지 경청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그 지혜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따라 사회라는 배의 항해가 결정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 인생에 활력을 준다
우리는 날로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운전 중에 음악을 들으면서 현재의 교통 상황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운전을 하면서도 이런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내가 조금 전에 지나왔던 구간에서 교통사고 때문에 교통 체증이 아주 심하다는 방송이 나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또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죽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따지고 보면 죽음은 항상 우리 가까이 있는데, 평상시에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어떤 기회가 되어서야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인식을 했다 하더라도 그 생각은 곧바로 사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십대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마지막인 죽음과 간헐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지식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영향력, 죽음이 우리에게 미치는 힘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시간을 더 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살게 됨으로써 얼마간 죽음을 의식에서 지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현명하다면 죽음을 잠시 동안 잊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죽음은 우리의 의식 속에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존재하는 죽음이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을 항상 결정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죽음이란 존재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 우리의 삶에 관여하고 있는지를 자주 인식하게 된다.
죽음은 아주 약한 끄덕임, 꿈속의 작은 흔들림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죽음은 절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평상시에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조용한 죽음은 우리를 자주 혼란스럽게 만든다. 죽음이 가진 이런 형언할 수 없는 영향력은 우리가 저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 나이 오십이 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죽음은 아직 멀리 있으며 단지 예감할 수 있을 뿐인데, 하지만 이삼십대나 사십대보다 더 가까이 있는 그 죽음과의 만남을 늘 생각해야만 한다.
아울러 중년의 나이에 이른 우리는,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 죽음은 확실한 존재이고, 우리가 그 확실한 존재를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지금까지는 단지 관객으로서 구경하고만 있던 사람도 배우로 참여하여 죽음이란 등장인물과 인생이라는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나 역시 이제부터는 공연을 함께 해야만 하고, 이제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무대에 올라가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인생으로부터 받은 이 역할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만,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오늘 나는 내 연극 대사를 어떻게, 어떤 강약을 가지고 읊조려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 내용은 내가 살아오면서 이미 외우다시피 한 것들이다. 이것은 일종의 독백이고 이야기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생에 대한 송가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배우로 남게 되고, 죽음을 조용한 관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관객이 된 죽음이 무대 위로 올라오려면 내가 대사를 모두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대 위로 죽음을 부르기 전까지는, 죽음으로 하여금 어떤 역할도 맡지 못하게 할 수가 있다. 물론 앞으로도 무대 자체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시기, 즉 인생의 중반에 접어든 현재의 시점에서, 항상 자신이 우리 주위에 있음을 알리려고 하는 죽음을 기다릴 시간은 없다. 다른 일을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일은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지금 나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어떤 것도 우연에 맡기지 않고 항상 성실한 수공업자처럼 행동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다. 이렇게 행동할 때 죽음은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 될 것이다.
누구에겐가 기억된다는 것
오십대가 되면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욕구는 그 매력을 잃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 세대 -현재 살아 있는 경우 나이가 구십에 가까운- 를 보며, 그 나이까지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그런 확인을 하지 않더라도 극히 일부의 경우에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도 이미 알 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영원히 살고자 하는 소망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시 피하는 절망적인 시도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현재의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아직도 불멸의 존재로 남고 싶어 한다. 그것은 가장 강렬한 본능이며 대자연을 움직이는 법칙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의 육체는 죽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싶어 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 사회에서 진정으로 죽는다는 것은 잊히는 것인데,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잊히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현대에 맞는 방법으로, 우리를 잊히지 않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만의 독창적인 삶을 사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이라는 작품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행한 행동들의 집합체인데, 그 집합체들 중에서 어느 특별한 하나의 업적만이 두드러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은 그들이 남겨놓는 예술작품과 같은 물리적인 결과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된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인 결과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 평화롭고 사랑과 인내심에 가득 찬 삶, 그리고 누구에게 현재 자신의 행동이 영원히 기억되어 주기를 계산하지 않고 행하는 선한 행동에 의해서도 인생은 가꾸어질 수 있고 오랫동안 기억될 수도 있다.
한편 애석하게도 오십대에 접어든 우리들의 인생은 이미 윤곽이 드러나 있는 상태다. 즉 우리는 자신의 한계는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를 상당한 수준까지 알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나의 자손들에게 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라는 물음이 생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인생을 좀 더 다듬고 마무리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일상의 의무 외에 인생이라는 작품의 거칠거칠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우리 세대를 자극하게 된다.
인생이라는 작품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커다란 기회가 주어진다. 즉 인생은 정성을 들인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의무나 책임 때문에 일하는 기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자신의 진정한 작품(인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풍부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의무와 책임으로 살아온 시간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해왔던 직업에서 얻은 어떤 성취감이 인생이라는 작품이 되어야 하나?라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다. 답은 그럴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이처럼 중요한 인생에 대한 물음에 답을 피해가려고 하거나, 자신은 아직도 그런 물음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안 되었다며 은퇴 뒤로 미루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의 직장 생활을 열심히, 그리고 깨끗하게 마무리 짓고 은퇴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이미 늦은 것이 된다.
참고로 인간의 삶은 그 삶이 한 나라를 이끌어가거나 지하철역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거나에 상관없이 거대하고 세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삶을 계획하는 데 나이 육십이 되어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전략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고, 그 계획을 마지막까지 추진하는 힘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눈덩이는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스스로 커진다. 열심히 구르면 구를수록 점점 더 커진다. 구르다 보면 모서리 부분이 깨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보면 구르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더 큰 눈덩이로 남는다. 인생이란 작품도 이 눈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깨져나가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고, 너무 많이 깨져서 작품 전체가 미완성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고, 그 사람의 의도를, 즉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했는지, 인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이 세상에 무엇을 주고 싶어 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윤곽과 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생 동안 자신과 끊임없이 교류해야 한다. 이렇게 교류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누구에겐가 기억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 자신의 행동에 따라 어려운 일도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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