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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고

더좋은사람 2014. 6. 9. 22:48

여기 중동고등학교 한 선생님의 글이....|



참고서가 참고서일 수 있는 학교


-도서관 정상화, 그 길었던 '시작'-



1. 나는 한번도 역사가 오래된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 졸업한 중학교의 1회, 고등학교 2회 출신이다 보니 '선배'니 '전통'이니 하는 말들은 내게는 꽤나 낯선 것들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동경의 대상이 되는 법, 교직 진출을 준비하던 시절 '9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동은 내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수많은 무림지존(?)의 전설과 우리 근대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중동의 일원이 된다는 것, 신출내기 학교만 다녔던 풋내기 대학원생에게 어찌 신나고 짜릿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2. 그러나 실제로 경험한 중동은 오래된 학교가 아니라 새로운 학교였다. 새롭게 바뀐 재단의 의욕적인 투자, 마침 불어닥친 교육개혁의 열기, 참신한 교육적 시도와 첨단이었던 정보 관련 인프라들...
오히려, 이 학교가 오랜 전통을 지닌 학교임을 보여주는 것은 별로 없었다. 1984년에 지은 '근대식' 콘크리트 학교 건물은 전통을 느끼게 해 주기보다는 낡았다는 인상만을 주었고, 그나마 학교 안뜰에 서 있는 연도미상의 설립자 동상, 그리고 복도 한 구석에 놓인 빛 바랜 트로피와 옛 수송동 교사(校舍) 사진 정도만이 역사를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3. 전통 있는 학교의 도서관은 단순한 '도서 대여점'이 아니다. 그 곳에는 학교를 거쳐간 여러 사람들의 역사가 담겨 있을뿐더러,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확충된 자료 속에는 각각의 시대가 냈던 목소리들이 묻어 있다. 먼지 쌓인 장서들은 우리의 지난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들인 것이다.

나는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오래된 학교의 도서관에서 역사를 느끼기를 바랬다. 그러나 도서관을 처음 접한 순간 나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도서관에 아예 책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장서라고 남아있던 극소수의 책들도 시간이 없어 버리지 못했거나 그나마도 관심을 끌지 못해 서가를 차지하고 있던 각 기관에서 보내온 홍보용 책자들이거나, 학교 도서용으로 '문교부'가 배부한 듯한 허름한 문고판 도서들 뿐 이었다.

나는 설립자 최규동 선생님이 우리 나라 초창기 수학계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자였고 애서가(愛書家)였음을 알고 있다. 또한, 왜정시대의 중동 도서관은 귀중한 자료를 다수 소장하고 있었고 꽤 규모가 컸다고 들었다. 60∼70년대에 중동을 다녔던 졸업생들도 크고 자료가 많으며 자유롭게 장서를 대출할 수 있었던 도서관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1996년에 내가 접한 도서관은 단순한 '폐지 수합소'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선배 선생님들과 동문들로부터 도서관에 관한 여러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80년대에 강남으로 학교를 이전하면서 도서관 장서를 '트럭 째' 갖다 버렸다는 이야기, 이미 수송동 시절부터 장서들은 차마 버리지도 못하면서 장소만 차지하고 있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여 비에 젖고 쥐똥을 뒤집어쓰면서 학교 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는 말들...

4. 괴테는 "덕은 자기 자신 때문이지만 결점은 시대 탓"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변명 같지만, 굳이 따진다면 중동 도서관의 몰락도 결국 '시대 탓'이다. 왜냐하면 중동 뿐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 도서관 중에서 80∼90년대를 거치면서 수난을 겪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학교 도서관은 이토록 수모를 겪어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학력고사 시대'의 공부가 '책이 필요 없는 것'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학 진학이다. 이 시대에 진학을 판가름하는 유일한 잣대는 내신과 학력고사 점수였고, 이 두 가지는 결국 교과서의 지식을 얼마나 '반복·숙달·암기'했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진학을 위해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은 교과서 안에 있었으므로, '교과서의, 교과서에 의한, 교과서를 위한' 공부가 학력고사 시대의 모토이다시피 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현한 것이 소위 '참고서'이다. 원래 참고서란 원래 참고도서를 의미한다. 참고도서란 공부하다가 모르거나 더 상세히 알아야할 내용이 있으면 읽어보아야 할 책들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참고서'는 여러 참고도서에서 교과서를 반복·숙달 ·암기하는데 필요한 '핵심 엑기스'를 뽑아 정리해 놓은 것을 의미한다. 이 '참고서'만 있으면 학생들은 필요한 부분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고등학생의 공부란 '교과서와 참고서로 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고 때로는 야단맞아야 할 시간낭비로까지 여겨졌다.(80년대 후반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도 고 3 때 도서관에서 {장자}를 읽다가 담임선생님께 '들켜서' 담배 피다 걸린 학생만큼 혼난 적이 있다.)

수요가 없는 것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학교 도서관은 이런 상황에서 자리할 곳이 없었다. 학교들이 도서관을 '독서실'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장서는 폐기되고 책이 차지하던 공간은 자습용 책상들로 대체되었다. 수많은 독서를 한 학생보다 책 한 권 읽지 않았어도 교과서를 열심히 판 학생이 더 좋은 대학을 가는 현실에서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도서관은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주범이었을 뿐이다.

5. 물론, 학력고사 시대의 '공부'가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수많은 비판이 있었고, 교육의 패러다임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1995년부터 시작한 교육개혁은 단편적인 지식을 단순 암기한 학생보다 수많은 독서와 경험을 쌓은 학생이 더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는다는 '상식'이 통하는 교육풍토를 지향하고 있다. 독서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기 시작했고 학교 도서관의 가치가 새삼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것을 회복하는 것은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누구나 필요성을 느끼는 상황이었지만 도서관 재건은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었다. 10여 년을 넘게 교육계를 지배한 '학력고사 패러다임'의 힘은 무척이나 강했다. '고등학생의 공부함' 속에서 이 패러다임이 삭제시켜버린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고 읽는 활동'을 다시 복원하기에는 길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아직도 우리 교육계에서 이 개념은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 같다.) 수많은 저항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내가 부임한 1996년 이후로도 도서관을 부활시키려는 학교와 재단 측에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고, 학생과 선생님들의 부단한 요구가 있었지만 복잡하게 얽힌 여러 문제들로 도서관은 좀처럼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6. 1999년 봄, 나는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는 사서선생님을 대신하여 오전에 도서관 관리를 자원했다. 주위에서는 '덜 떨어지고 어리숙한 젊은 선생의 치기 어린 행동' 쯤으로 여겼겠지만, 이 시기에 도서관 근무는 내게는 정말로 행복한 경험이었다. 먼지 쌓인 폐지더미 같은 서가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쓰레기도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보물로 탈바꿈한다. '책 쓰레기'는 특히 더 그렇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나는 1922년 판 동아일보 영인본을 찾아내기도 했고, 백농 선생님의 장서였던 듯 싶은 소화(昭和) 연호가 찍힌 수학 사전을 발견하기도 했다. 최인호의 {바보들의 행진}과 같은 먼지 묻은 70년대 베스트셀러 속에는 그 때의 중동학생들이 연애 고민, 선생님을 묘사한 낙서가 적혀있어 혼자 키득거리며 웃기도 하고, {위대한 게츠비} 뒤에 적힌 80년대 재학생의 진로에 대한 한없는 고민은 같은 시대를 보낸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책을 통해 세월을 뛰어넘어 전통과 역사를 만나는 경험, 그것은 오래된

학교의 도서관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지만 연륜 쌓인 도서관이 없이는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더욱 행복했던 것은 이 폐지 더미 속에서 나는 도서관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볼만한 장서는 거의 없었고 분류조차 안된 상태였어도 그래도 하루에 20-30명의 학생이 장서를 둘러보고 책을 빌려가곤 했다. 기본적인 '수요'가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99년의 노력은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수업과 적지 않은 업무 부담, 게다가 학업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도서관까지 맡고 있기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시 도서관의 문이 잠기고 장서는 폐지더미로 되돌아갔어도 도서관이 살아날 가능성과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고 있었다.

7. 2001년은 중동 도서관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 해이다. 오랜 준비 작업, 논의와 고민 끝에 학교가 도서관을 정상화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도서 구입 예산이 확대 편성되고 새로운 사서 선생님을 모셨으며, 도서관 운영 위원회도 구성되었다.

지난 4월 30일 재개관된 이후, 도서관은 지금까지 도서관이 없이 어떻게 학교가 운영되어 왔을까 싶을 만큼 놀라운 이용율을 보이고 있다. 5,000여권 남짓한 장서를 갖춘 도서관의 매달 대출장서 수가 1,000여권을 넘어서고 있으며 점심, 방과후 시간에 서가는 지적 호기심에 불타는 학생들로 가득차곤 한다.

게다가 감동적인 것은 어느 누구도 요구하거나 알리지 않았음에도, 선생님, 학부모, 동문, 학생들의 도서 기증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몇 달 안 되는 기간동안 기증 받은 장서 수는 무려 2,000여권에 달한다. 도서관에 대한 학교 구성원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동안 분실되었던 학교 역사 자료도 꾸준히 수합 되고 있다. 이미 50년대 이후의 졸업앨범과 교지를 상당수 회수하여 정리한 상태이고, 그 이전 자료와 기타 자료들도 꾸준히 찾는 한편 중동의 이후의 역사가 될 자료들도 체계적으로 모으고 있다. 이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다운 역사 자료를 도서관을 통해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8. 현재 도서관은 매달 100여 만원 정도의 도서 구입 예산을 투입해 가며 장서 확충에 힘쓰고 있으며 각종 독서교육 관련 행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확신컨대, 지금의 추세대로 도서관이 발전해 나간다면 우리학교 도서관은 앞으로 4,5년 내로 일제시대 중동 도서관이 누렸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규모와 이용률, 교육프로그램 면에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학교 도서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공부란 교과서와 참고서로 하는 것'이라는 학력고사 패러다임이 교육을 여전히 지배하는 한 결국 도서관은 학교교육에 있어 필요충분 조건이 아닌, '수업 외에 덤으로 즐기는 사치'로 여겨질 뿐이다. '참고서'가 지금처럼 교과서를 요약 설명한 책이 아닌 '참고도서'로 여겨지고, 폭넓은 참고도서의 섭렵이 진정한 학습의 일부로 인정받는 교육 풍토 속에서만 도서관은 학교 속에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미래는 그러한 학교 풍토를 요구하고 있고, 다행히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도 그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도서관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 남은 변수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이용하는 이들의 노력과 애정뿐이다.

하늘은 결국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학교구성원들의 도서관에 대한 지금의 관심과 노력이 계속된다면 하늘도 결국 도서관을 도울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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