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축하해. 그런데 언니가 하는 것 보니 나도 자신감이 생기는데.”
“언제 입학했는데 이제 졸업이야?”
“고생 많았다. 축하한다. 그런데 그거 해서 뭐하려고?”
“하하하. 친구야. 머리 큰 값 했구나.”
“야! 다음에 만나면 지구를 들게 해주겠다.”
"졸업 축하한다. 이제 동창 모임에 나오냐?" 졸업 전후로 받은 문자 메세지다.
2010년 2월 24일. 특별히 준비된 듯한 영상 20도의 화창한 날씨는 졸업하기 좋은날,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방송대 졸업식을 가졌다. 60대 언니들은 방송대 졸업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왔다며, 북쪽바다와 남쪽바다의 귀한 특산물을 차려놓고 술잔을 부딪히며 찬! 찬! 찬! 모처럼 많은 손님이 오니 음식의 양도 헷갈리고 음식 맛도 실수연발로 쩔쩔맸지만 웃고 떠드느라고 신바람이 났다. 전국에서 모여든 형제들과 아버지께 혼났던 얘기 등 옛 추억을 더듬어 가며 자정을 넘겼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혼내실땐 항상 일관성이 있었다. 위계질서를 위해 항상 동생을 혼냈기 때문에 오빠랑 싸우면 이유가 어쨌든 참아야 하고, 동생과 싸우고 일러 바치면 틀림없이 손해가 없다는 이야기. 벌주인지 축하주인지 한잔 마신 술 때문에 토끼 눈이 되어서 걱정했는데 이튿날 말끔해졌다.
우리 부모님의 여섯 딸 중 다섯이 모여 졸업식장으로 향하면서 지난 4년을 돌이켜 보았다.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병원가는 것보다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라는 말처럼, 지난 시간들이 시험의 고통까지 모두 잠재우고 산뜻하게 내 마음은 풍선. 공부에 몰입하기 위해 7년 동안 했던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도 중단했고, 기말 시험 날 결혼한 조카 결혼식에 참석 못한 점은 미안하다. 방송대의 가장 무서운 회초리는 과락이다. 과락이 무서워 행락 철에 가고 싶은 여행도 못가고, 어떤 모임에서 금반지를 상품으로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시험전날이라 포기했던 기억은 왜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1학년 때 학습관에서 선배들에게 공부법을 배우느라고 질문을 참 많이 했고, 방송대 홈페지를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문학과 관련이 있으면 다른 학과 특강에도 찾아가서 듣고, 몸살로 열이 나서 걱정을 하다가도 아침이면 거뜬해질 정도로 호기심이 가득했던 시기다. 시험이 힘들면 이걸 해서 뭐하나? 공부가 재미있으면 돈과 나이와 시간과 상관없이 좋은 학교에 왜 이제야 왔나?
2학년 땐 사춘기를 겪으며 여섯 과목이나 권총(F)을 찬 아찔한 성적표. 그러나 성공은 실패에서 태어나는 법. 다시 4학년을 맞아 ‘그래 공부란 이렇게 하는 거라구.’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지우개 머리 탓에 오래도록 앉아서 엉덩이로 승부를 걸었다. 자나 깨나 듣고 읽고 쓰고. 국문과 모꼬지 장기자랑에서 우수상도 받고, 통합문학제에서 우수상을 받는 추억도 새겨 놓았네.
가장 즐겁게 공부를 했던 과목은 ‘현대문학강독’이었고, 계절시험을 두번 봐서 통과한 과목은 ‘여가와 삶’이었다. 아름다운 배경음악에 곁들여진 고운 목소리의 시낭송과 소설을 들려주는 ‘현대문학강독’은 들을 때마다 신선놀음, 공부를 즐기던 전성기였을 것이다.
“이게 공부야? 인생 즐기는 거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
이 시기 나의 자화상을 그려 놓았더라면 행복이 충만한 방송대 공주의 모습으로 아무리 숨기려 해도 행복이 넘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여가과 삶’은 상식적인 수준으로 보고 덤볐다가 예술과 체육 등의 전문용어 때문에 고전했다. 공부는 학교의 규칙에 따르고, 좋든 싫든 교과서와 친하게 지내고 교수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병원에 가면 환자가 많고, 테니스 코트에 가면 테니스 광들이 모이고, 방송대에는 공부에 풍덩 빠진 사람들이 많다. 어떤 선배는 과목마다 正자 표시를 하며 강의를 스무 번씩 듣고 교과서를 다섯 번씩 정독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는데 난 과락 때우고 과락 면하기 위해 4년을 보냈다.
3 만여 명이 운집한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들어서는 기분은, 초등학교 때 어린이날 학교운동장에 울려 퍼지던 '올림피아마치'나 ‘위풍당당’ 행진곡을 듣는 기분이랄까? 무한한 상상력이 뇌를 자극했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 ‘깍꿍’하고 한꺼번에 나타난 동심의 추억이 살랑살랑, 룰루랄라 신비로운 세상. 새까만 까마귀 복장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어두운 표정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결같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꽃을 들고 대가족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은 방송대 졸업의 맛은 이거야! 나도 졸업장을 받고 졸업 까운을 입고 강렬한 봄볕에도 밝은 웃음을 지으며 언니들과 명희씨와 사진을 찍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내빈들의 소개와 축사가 있었는데 한가지 실망스러운점이 있었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는데. 1만 8천4백10명의 졸업식에 명문사립대출신 대통령은 물론 주무부처 교육과학기술부장관마저 얼굴을 보이지 않다니?
"어쩜 장관도 영상으로만."
"총리는 커녕 교육부장관도 안오다니?"
졸업생들이 한마디씩 했다.
총장님의 축사가 끝나고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성적우수자에 대한 시상식, 입구는 넓고 출구는 좁다는 방송대 공부에 4년 동안 평점이 4.5만점이라니! 공부의 神? 몹시 부러운 사람들에게 심통이 나서 ‘할 일이 저렇게 없나?’ 책과 대결의 결과인지 얼굴이 말라 보여서 4년 만에 하는 졸업으로 만족한 내 얼굴은 살이 넘치고. 난 초등학교 이후 우등상을 한번도 못 받아봤는데. 시상식이 끝나고 ‘이별의 노래’와 함께 졸업생 대표의 답사를 듣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가’를 불렀다. 音樂科도 없는 대학에 관현악단의 멋진 축하연주 브람스 ‘대학축전서곡’으로 아름답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대학축전서곡!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 무엇에 몰입할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음단계인 대학원도 알아보고 문예창작과 편입에도 관심을 가져보았다. 더 이상 진학을 할 수 없는 모든 조건들이 딱 들어 맞아서 무기한 미루기로 했다. 우선 실력이 형편없고 학비도 엄청나고, 핑계지만 눈에 노화현상도 나타나고, 후딱 내 마음과 협상을 마무리 짓고 주어진 만큼만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 환경에서 경기여자방송고등학교 3년을 포함 7년 동안이나 학교를 다녔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철이 없기도 하고 꿈을 먹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만일 20 대에 대학을 졸업했다면 무엇에 승부를 걸었을까? 분명히 두 가지에 풍덩 빠졌을 것이다. 토플이나 토익 때문에 걱정할 일도 없고, 대학원으로 가라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지만 짐이 무겁다.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이론에서 문학의 실천으로 가는 험난한 인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쾌한 행진곡을 듣는 기분으로 입장한 졸업식장에서 나오면서 다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왔다. 과락이 회초리를 들고 기다리진 않지만 몸은 힘들게 마음은 편안하게, 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질 것. '삶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 평생이 걸린다'는 세내카의 말처럼 평생 배우며 국문과생의 학습태도는 계속 될 것이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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