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카메라 추억

더좋은사람 2015. 6. 11. 05:04

집 안 정리를 하다가 옛 물건들을 발견했다. 문득 고향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보면 같이 놀던 친구나 풍경이 아닌 아버지와 함께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태어난 충남 보령에서 지낸 기간은 백일. 백일을 갓 넘기고 맡겨진 곳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인 보령의 할아버지 집이다. 친할머니의 손에서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까지 지내다 다시 충북 단양으로 옮겨졌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단양공장 직으로 이사를 해야만 되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시골 같은 동네에서 함께사는 이웃이다. 그곳 보령에서 서너 해를 보내다, 다섯살이 되어서야 내가 태어난 곳인 보령에서 단양으로 이사를하고 3년뒤 단양초등학교 6년을 다녔다. 지금도 가끔씩 충청도와 경상도, 강원도를 넘나들던 나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 워낙 착하고 순해서 어디에 놔둬도 무던하게 잘 놀더라는 게 어머니의 말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또 다른 이유가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 구멍가게에서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처음에는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들이 부담스러웠고 나중에는 아들 넷까지 오부자가 태어나서 힘에 부쳤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둘째 동생은 부모님의 곁을 떠나 있었다, 친척들의 사정으로 거처를 옮길 때면 아버지가 아들넷을 다 데리고 다니셨다.

 이런 연유로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겨운 어감이나 기억과 달리 유독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게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저만큼 앞장서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강가에 앉아 낚시를 하던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전하던 모습 몇몇이 떠오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세월이 지날수록 그 기억들이 더욱 또렷해진다는 것이다. 앞서 걷던 아버지가 휘청거리며 걸었던 거 같고, 아버지에게 건넨 도시락에만 속에 달걀이 들어 있었던 것도 같다. 이런 기억들을 어머니에게 말하면, 어머니는 사실 확인 대신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많이 닮아간다는 말을 하신다.

 그 옛날의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카메라를 사고, 사진을 찍겠다고 우리 여섯 식구 몇달치의 생활비를 들고 집을 나간 분이셨다.그렇게 모은 돈으로 차린 게 공장앞 매점이었다는데 그 매점보다 작은 구멍가게란 말이 어울리지만 가게를 자주 비우는 아버지는 항상 공장에서도 사진을 찍지 못한 아버지가 다행히 다시 사진을 찍겠다는 소리 대신 돈버는데 매력을 느끼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버지의 많은 것을 보았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방황과 가난 때문에 뜻대로 할 수 없었던 많은 시간들.  아버지의 모습까지. 세월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또렷해지는 건 애쓰며 글을 쓰는 내게, 아버지 당신처럼 휘청이거나 취하지 말고 씩씩하게 나아가라는 당부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