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
사람에겐 누구나 첫사랑이 있고 특히 남자에게 첫사랑에 대한 의미는 언제나 보고 싶고
잘되서 그녀 앞에 나타나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인지도 모른다.
어릴 땐 돈이 없어 잘 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회장의 첫사랑은 ‘오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의 나뭇잎 같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성공해서 사랑했던 그녀 앞에 나타나 보고 싶은 춘향전의 이몽룡처럼
지금은 북한 땅이 된 통천의 이장 집 딸이었던 정회장의 첫사랑은 통천에서도 제일가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 당시는 시골이라 그 동네에서 동아일보를 유일하게 구독하는 집에 사는 그녀는
너무 예뻤던 모양이다..
정회장은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몸에 진이 다 빠진 후에도
이장 집에 가 동아일보를 받아 올 생각만 하면 20리 떨어진 길도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쏜살같이 달려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동아일보에 연재되고 있던 이광수의 "흙"을 보며 ‘허숭’처럼 경성에 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두 살 많은 이장 집 딸에게 농군의 모습이 아닌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문을 받을 때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천사같이 예쁜 그녀의 모습에 소년 정주영은 눈이 부시고
가슴이 울렁거려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얼굴이 빨개지고 화끈거려 땅바닥만 바라보았고 신문을 주는 손만 봐도 천사의 손보다 더 곱다고
생각했다.
"흙"과 이장 집 딸 때문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던 그때 그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꿈을 이루겠다고 네 번의 가출 끝에 고향 통천을 떠난 정회장은 온갖 고생 끝에 광복 이후
현대건설 간판을 걸고 건설업과 자동차 수리업을 해 꽤 큰 돈을 벌었다.
정회장은 항상 마음에 품고 살던 첫사랑이 보고 싶어 고향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얀 신사복에 앞이 뾰족한 백구두를 신고, 모자도 쓰고, 좋은 시계도 찼다.
당시 아주 멋쟁이 같은 모습으로 친구 김영주와 함께 고향에 가 그녀를 만났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해 아이를 둘이나 두고 있었다.
그녀는 신랑을 소개해주면서 밥을 차려주었지만 정회장은 여전히 그녀가 너무나 예뻐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 가슴이 울렁거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식사를 끝냈다.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그 여자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 식사 대접을 한 번 더 받고 준비한 선물을 준 뒤 헤어졌지만 그 후 오랜 세월 첫사랑은
정회장의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67년이 흘렀고 17세 소년이었던 정주영은 84세의 한국 최대의 재벌이 되었다.
그는 이익치 회장에게 자신이 북한에 가려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먼저는 국가와 민족의 통일, 두 번째는 보고싶은 여인, 첫사랑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익치 전 회장에게 김정일에게 그 여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에서 첫사랑을 데려와 매일 아침 손잡고 걸어서 출근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정회장은 서울 가회동에 첫사랑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라고 이익치 회장에게 지시했다.
이회장은 가회동에 매물로 나온 전 화신산업 박흥식 사장의 집을 70억원에 매입했다.
가회동 2층에 침실을 마련했고 그날부터 정회장은 가회동에서 기거했다.
정회장에게 첫사랑에 대한 희망은 곧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
2000년 초 자식들의 재산 싸움을 보면서 정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정씨 일가의 경영 일선 퇴진과 전문 경영인 체제 도입을 선언했지만 자식들은 이를 거부했다.
정회장은 더욱 큰 실의에 빠졌고 이것은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었기에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을 성공시키며 김정일의
초청을 받아 6월28일 판문점을 지나 평양에 갈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정회장은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한 첫사랑 여인이 2년 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당시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의 관계 당국이 동원되어 통천 이장 집 딸을 수개월간 찾았다.
북측은 정회장에게 전쟁 때문에 폐허가 된 통천을 떠난 그녀가 청진에서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
그 가족을 평양에 데려다 놓았으니 원하면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을 전달했다.
정회장은 북한의 아태평화위 송호경에게 한 시간여 동안 그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정회장은 “2년 전에만 알았다면 아산병원에 데려가서 고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가
좀 늦었다”라며 아쉬워했다.
그 후 정회장은 다시 북한을 찾지 않았다.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을 본 정주영 회장은 몇 달 후인 2001년 3월 눈을 감았다.
그의 첫사랑은 평생을 그의 마음속에서 함께했고, 결국 그도 세상을 떠났다.
사랑의 힘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고 성공의 원천이 되었다는 정회장의 여인은 세명 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사랑은 순수하고 사랑의 상처가 없었을 때, 사랑을 모를 때 사랑했던 것이 더 오래
기억되는 것 인줄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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